집합적 행동논리와 사회적 자본 담론
펴낸날 제1판 제1쇄 2018년 8월 20일
지은이 박종화
펴낸이 임춘환
펴낸곳 도서출판 대영문화사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로 61길 5(청파동 1가) 제일빌딩 2층
등록 1975년 12월 26일 제3-16호
전화 (02)716-3883, (02)714-3062
팩스 (02)703-3839
ⓒ 경북대학교산학협력단장, 2018
ISBN 978-89-7644-711-1
값 25,000원
*잘못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한국연구재단 2015~2018 출판지원 저술
이 저서는 2015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5S1A6A4A01009515)
차 례
서 문/3
제1부 사회적 자본의 개념화
제1장 공공정책과 사회적 자본19
제1절 머리말19
제2절 정책자원으로서의 사회적 자본22
1. 사회적 배제의 위험성을 배려하는 정책/24
2. 인생-행로 전이를 지원하는 정책/25
3. 커뮤니티 개발정책/26
제3절 정책결과로서의 사회적 자본29
1. 수명기회의 향상/30
2. 보다 나은 거버넌스/30
3. 시장실패의 극복/32
4. 형평성의 개선/33
5. 외부성(externalities)의 관리/34
6. 쇠퇴의 저지/35
제4절 맺음말과 공공정책상의 함의36
제2장 사회적 자본의 의미42
제1절 머리말42
제2절 사회적 자본의 형태와 정의43
1. 사회적 자본의 형태/44
2. 사회적 자본의 개념화/45
제3절 집합적 행동의 딜레마47
1. 파당의 해악/47
2. 집합적 행동 딜레마의 원인/49
제4절 사회적 자본의 원천, 유형, 영향51
1. 사회적 자본의 원천/52
2. 사회적 자본의 유형/53
3. 사회적 자본의 영향/54
제5절 호혜성의 규범과 네트워크56
1. 호혜성의 규범/57
2. 집합적 행동 문제/58
3. 네트워크/60
제6절 맺음말63
제3장 집합적 행동의 논리69
제1절 머리말69
제2절 전통적 집합적 행동 이론71
1. 전통적 집합적 행동 이론의 전제/72
2. 공통이익과 개별이익/73
3. 무임승차의 유혹/74
제3절 제1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75
1. 제1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의 전제/76
2. 공통이익과 개별 인센티브/77
3. 제1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의 한계/78
제4절 제2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80
1. 집합적 행동의 편익과 한계/80
2. 집합적 행동에서 사회적 자본의 역할/82
3. 가상적 집합적 행동 상황/83
제5절 죄수의 딜레마 게임과 정책적 처방90
1. 죄수의 딜레마 게임/91
2. 정책적 처방/96
제6절 맺음말100
제2부 사회적 자본의 정책 적용
제4장 사회적 자본의 기능109
제1절 머리말109
제2절 사회적 자본의 긍정적 기능111
1. 교육과 어린이 행복/111
2. 안전한 동네/113
3. 경제적 번영/116
4. 건강과 행복/121
5. 민주주의/127
제3절 사회적 자본의 부정적 기능130
1. 정치적 부패/131
2. 네트워크 폐쇄/133
3. 집단사고/135
제4절 맺음말138
제5장 사회적 자본의 역기능성-RIS 차원의 해부144
제1절 머리말144
제2절 사회적 자본과 지역혁신체계(RIS)146
1. 사회적 자본/147
2. 지역혁신체계/149
3. 사회적 자본과 지역혁신체계의 관계/151
제3절 지역혁신체계에서 사회적 자본의 역기능성154
1. 네트워크 폐쇄/154
2. 집단사고/157
3. 과잉동조/160
제4절 정책적 함의162
1. 구조적 차원/163
2. 관계적 차원/165
3. 인식적 차원/167
제5절 맺음말169
제6장 사회적 자본의 분포 불균등성176
제1절 머리말176
제2절 이론적 고찰177
1. 사회적 자본의 정의/178
2. 사회적 자본의 종류/180
3. 호혜성과 집합적 행동/181
제3절 사회적 자본의 잠재적 편익과 한계: 기존 분석결과의 요약183
1. 잠재적 편익/184
2. 잠재적 한계/185
제4절 사회적 자본의 분포 불균등성의 의미와 문제점187
1. 분포 불균등성의 의미/187
2. 분포 불균등성의 문제점/188
제5절 처방적 정책논리194
1. 참여적 거버넌스/194
2. 자발적 협력형 내적 조건의 창출/196
3. 공공재적 속성 고려/198
4. 새 형태의 공동체 역동성/200
제6절 맺음말203
제7장 사적 도시공간의 공적이용-사회적 근접성의 영향209
제1절 머리말209
제2절 이론적․제도적 고찰212
1. 도시재생 패러다임의 변화와 생활인프라/213
2. 근접성 개념의 다의성과 사회적 근접성/215
3. 생활밀착형 공공공간에서 사회적 근접성의 의미/217
제3절 사례의 분석219
1. 사례의 개요/220
2. 사례의 내용분석/223
3. 사회적 근접성의 영향과 그 한계/236
제4절 정책적 함의239
1. 조직 구조적 차원/239
2. 실행 관계적 차원/241
3. 성과 확산적 차원/244
제5절 맺음말 247
제3부 사회적 자본의 측정 이론과 경험
제8장 사회적 자본의 측정257
제1절 머리말257
제2절 사회적 자본의 정의와 형태258
1. 사회적 자본의 정의/259
2. 사회적 자본의 형태/263
제3절 사회적 자본의 측정상의 유의점과 지표270
1. 사회적 자본의 측정상의 유의점/271
2. 사회적 자본의 지표/273
제4절 맺음말277
제9장 사회적 자본 측정의 실제282
제1절 머리말282
제2절 사회적 자본의 측정사례284
1. 사회적 자본과 도시경쟁력/285
2. 벤처기업 연계협력과 사회적 자본/295
3. 역사문화 콘텐츠 활용과 사회적 자본 형성/300
제3절 사회적 자본 측정 경험의 분석결과305
1. 사회적 자본과 도시경쟁력 간의 분석결과/306
2. 벤처기업 연계협력, 신뢰, 성과 간의 분석결과/308
3. 역사문화 콘텐츠 활용과 사회적 자본 형성 간의 분석결과/322
제4절 사회적 자본 측정 결과의 정책적 함의329
1. 사회적 자본과 도시경쟁력 간의 분석결과의 정책적 함의/329
2. 벤처기업 연계협력, 신뢰, 성과 간의 분석결과의 정책적 함의/332
3. 역사문화 콘텐츠 활용과 사회적 자본 형성 분석결과의 정책적 함의/334
제5절 맺음말336
제4부 미래의 과제와 비전
제10장 한국사회에서의 사회적 자본345
제1절 머리말345
제2절 한국사회와 신뢰350
1.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경험/352
2. 압축성장과 제로섬 기업문화/356
제3절 사회적 자본과 개발정책360
1. 뉴 노멀 현상/361
2. 사회적 분열과 사회적 배제/363
3. 포용적 성장과 사회적 자본/369
제4절 국외의 경험에서 얻는 교훈373
1. 불타는 나폴리/373
2. 협력과정과 정직의 눈/377
3. 터키 알라니아 어장/379
4. 공유경제/382
제5절 한국의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3대 방향386
1. 공적신뢰의 회복/387
2. 열린 네트워크로의 이행/391
3. 공동체 정신의 함양/393
제6절 맺음말398
후 기/405
찾아보기/411
서 문
지난 20~30년 사이에, 사회적 자본이 사회과학에서 가장 논란이 된 개념들 중 하나이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적 관계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자본과 같이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이 건강한 노령화, 보다 나은 지역사회 거버넌스, 시장실패의 극복, 형평성의 개선, 외부성의 관리, 그리고 근린지구 노후화와 도시재생 등에 이르는, 아주 다양한 사회적 및 정치․행정적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중요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 책은 사회적 자본이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우리를 더 스마트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고, 안전하게 하고, 부유하게 하고, 그리고 정의롭고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보다 잘 꾸려 나갈 수 있도록 하는지에 대해 기본 개념적 논의, 공공정책적 측면, 측정 문제 등을 중심으로 이론과 실제 양 측면에서 깊이 있게 논의한다. 특히, 사회적 자본의 개념화 과정에서 ‘집합적 행동의 딜레마’와 ‘집합적 행동의 논리’를 전통적 논의, 제1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 그리고 제2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으로 구분하여 검토한다.
몇 년 전 한 식혜회사는 ‘으리(의리)’를 외치는 배우 김보성을 CF 모델로 등장시켜 전년대비 매출액 35% 증가라는 히트를 쳤다. 그가 등장하는 다소 우스꽝스런 광고동영상은 유튜브 조회 300만 건을 훌쩍 넘었다. 어떻게 ‘한물 간’ 배우와 ‘별반 특별하지 않은 상품’에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이변이 나타난 것일까? 일부 경영학자들은 “배우의 이미지와 광고 내용이 딱 맞아 떨어져서” 내지 “의리를 외쳐왔던 김보성의 진정성에 사람들이 감동해서” 등의 진단을 내어 놓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내가 제대로 지키지 못하지만 중요한 그 무엇(의리)을 누군가가 부르짖는 모습에서 반가움”을 느꼈을 수 있다(조선일보, 2014.11.1-2: C2).
각박하기로 따지면 우리나라 중소기업 생태계는 뒷줄에 서지 않는다. 대기업의 ‘갑’질에 사업을 접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신뢰관계를 구축해 함께 성장하는 나라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독일이다. 독일은 지멘스나 BMW 등 대기업이 협력업체의 연구․개발(R&D) 비용을 대신 부담하기도 하고, 가격 후려치기와 같은 불공정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독일 공기청정기 회사인 ‘벤타 에어워셔(Venta Airwasher)’의 알프레드 히츨러(A. Hitzler) 사장도 믿음과 관계를 강조했다(조선일보, 2014.11.1-2: C2). “저희 성공의 핵심 원천은 협력업체와의 끈끈한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 왔습니다. 저희에게 협력업체는 가족과도 같아요. 따라서 그들의 수익을 보장해 주고 일거리를 지켜주는 것은 철칙입니다.” 벤타 에어워셔는 부품 전부를 40여 중소기업 공급사에 위탁 생산하며, 본사는 조립하고 검수하는 일만 한다. 본사는 R&D에 특화한다. 벤타의 모든 제품은 독일에서 만들어진다. 협력업체도 모두 벤타 본사 주변에 모여 있다. 히츨러 사장은 “중국에서 만들면 더 저렴한 가격으로 더 많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서 협력업체와 함께 일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들과 함께 쌓은 노하우가 있거든요. 오랜 관계를 통해 저희는 서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14년 초에는 이탈리아 나폴리 마피아 조직 카모라(Camorra)가 주도하는 유해폐기물의 불법적 소각에 따른 대기오염과 지하수원 오염 등에 대해 ‘불타는 쓰레기 도시 나폴리’라는 이색보도가 있었다(Marchetti, 2014.1.27: 22-23). 환경오염과 농산물 오염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아체라의 시장 라파엘레 레티에리는 “이탈리아 농산물의 세계적 평판을 깎아 내리고 지역경제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세계적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해외에 사는 내 친구들은 요즘 이탈리아 농산물을 사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왜 벤타 독일의 히츨러 사장은 협력업체를 존중하고 그들의 자율성을 보장해 줄까? 왜 독일기업들은 제품개발 초기부터 협력업체와 머리를 맞대는데, 우리 대기업은 흔히 자체적으로 개발 계획을 세운 다음, 목표하는 원가와 납기를 협력업체에 요구하면서 왜 그런 계획을 세웠는지를 미리 [ESI(Early Supplier Invovlement)] 가르쳐 주지 않을까? 벤타 독일의 히츨러 사장은 협력업체가 투자계획을 늘리도록 적정이익의 보장을 우선시하는데, 왜 우리 대기업은 협력업체가 받는 가격을 후려쳐서 관계도 나빠지고 협력업체의 경쟁력도 훼손될까? 왜 ‘갑’질하는 대기업의 임원과 협력업체 간에 납품을 전제로 또는 황금시간대에 홈쇼핑 방영시간 배정을 전제로 ‘부패사슬’이 존재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사람들 간에 의리 내지 신뢰관계에 목말라하면서 동종업계 사람들끼리 동업자 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할까? 왜 이탈리아 남부 휴양도시로 명성이 높은 나폴리는 경제적 자원의 왜곡된 분포가 강화되고 있고, 민주주의가 손상되고 있고, 그리고 공모와 부패가 만연하게 된 것일까?
몇 가지 흥미로운 주변 예를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에 대한 의문점들이 여러 다른 정책적 이슈에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의문점들에 대해 후쿠야마(Fukuyama, 1996)는 ‘신뢰’의 결여문제라고 간명하게 답한다. 독일, 일본, 미국 등 선진산업사회는 신뢰수준이 높은 사회임에 반해, 한국․중국 등은 신뢰수준이 낮은 사회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신뢰는 포괄적 호혜성을 전제로 한 신뢰이다. 따라서 특정적 호혜성에 주로 의존하는 한국과 중국 등은 혈연 등 가족에 집착하고 기업경영에도 그와 같은 요인이 강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퍼트넘 외(Putnam et al., 2000)는 이탈리아 남․북 간의 성장역량과 민주주의, 시민적 전통 차이 등에 대한 지역연구에서 주로 ‘역사적 우연’에 토대한 지역적 문화와 규범의 차이는 정치구조와 관행, 제반 거래관계, 그리고 경제적 성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보다 최근에 이루어진, 미국사회의 커뮤니티 붕괴와 재생 현상에 대한 퍼트넘(Putnam, 2009)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특정 시점을 전후하여 미국 커뮤니티의 사회적 자본 수준이 전반적으로 쇠퇴하고 있고, 그 사회적 자본 수준이 지역의 경제성장, 안전, 교육적 성취, 보건 등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의 답은 바로 사회적 자본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포괄적 호혜성’이 높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포괄적 호혜성이 높은 사회는 그 정의상 부정부패가 발을 붙이기 어렵고, 거래에 대한 감시 및 점검비용이 낮아지므로 경제적 효율성이 높고, 뿐만 아니라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적 한계집단에 대한 배려 역시 용이하다. 즉, 포괄적 호혜성이 높은 사회가 ‘좋은 사회(A Good Society)’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포괄적 호혜성이 높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정치사상가 등의 학자들, 정치가, 관료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예컨대, 맹자(孟子)는 이(利)에 따른 결정보다 의(義)에 따른 결정을 강조했다. 인간은 원래 측은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 사양지심 등을 가진 선한 존재이기 때문에 의(義)에 따른 결정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다만, 의(義)에 따른 결정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고, 인, 의, 예, 지 등의 덕(德)을 끊임없이 닦음으로서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맹자의 주장은 규범적으로 옳지만, 실제 제대로 구현되지는 못했다. 역설적으로, 성리학의 전통이 강했던 한국과 중국 등에서 오히려 서구사회에 비해 포괄적 호혜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특정적 호혜성이 지배적으로 작동해 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관련 논의 맥락을 서구 사회과학 논의에서 오래전부터 주목해 왔던 ‘집합적 행동의 딜레마’에서 살펴볼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 논의나 흄(D. Hume)이 인간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에서 언급한 농부들의 품앗이에서 상호신뢰와 믿음의 부족으로 인한 수확상실의 경우처럼, 참여자 모두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모두에게 가장 큰 이익이 주어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무임승차자나 기회주의적인 행동 등으로 인해 공동체 전체는 수확량 감소, 거래량 감소, 감시비용 증가와 편익 감소 등의 부정적인 효과를 얻게 된다. “포괄적 호혜성은 공동체의 자산이지만, 공동체 구성원들이 멍청하게 잘 속아 넘어가는 것은 그렇지 않다”(퍼트넘, 2009: 220). 단순한 믿음이나 믿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신뢰성이 핵심요소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에 대해, 올슨(Olson, 1965)은 벌써 반세기 전에 집합적 행동의 논리: 공공재와 집단이론(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 Public Goods and the Theory of Groups) 저서에서 전통적인 집단행동 이론가들인 벤틀리(Bentley, 1949)와 트루먼(Truman, 1958) 등의 지나치게 규범적이고 순진한 믿음(공통이익을 가진 개인들은 그 공통이익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행동할 것이다)을 비판하며, 집합적 행동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올슨(Olson, 1965)과 하딘(Hardin, 1968) 등은 개인들은 그들이 따로 남겨지게 되면 결합적 편익(joint benefits)을 성취할 수 없음을 지적하고, 이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들의 가정된 무능력(the supposed inability of individuals)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외부당국에 의한 규제, 선택적 인센티브의 제공, 또는 사유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오스트롬(Ostrom, 2005), 오스트롬과 안(Ostrom and Ahn, 2007) 등은 올슨(Olson, 1965)과 하딘(Hardin, 1968) 등의 집합적 행동 이론을 제1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으로 규정하고, 제2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을 제시한다. 제1세대 이론들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집합적 행동 상황들이 구조화되는 방식, 그리고 개인들이 어떻게 그 상황들에 대처해 나가는가에 대한 제한적인 경우만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제2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은 제1세대 이론에서의 원자화된, 이기적인, 그리고 완전히 합리적인 개인들의 존재를 비판한다. 보편적인 이기심의 가정을 비판하고, 다양한 유형의 개인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제1세대 이론의 핵심적인 모델링 도구였던 ‘표준적 비협력 게임이론’에 더하여 제2세대 이론은 행태적 이론과 진화적 게임이론을 이용한다. 행태적 이론에서 사회적 동기 문제, 그리고 진화적 게임이론에서 내생적 선호 문제 등을 다룬다.
따라서 이 책은 사회적 자본의 형태들이 어떻게 사람들 간에 신뢰를 증진하는지, 그래서 집합적 행동 상황에서 협력을 키워가는지를 제시한다. 집합적 행동의 다양한 측면은 사회적 자본의 개념에 의탁함이 없이 연구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상황에서는, 사회적 자본의 개념이 관련 퍼즐을 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은 어떻게 다양한 규모의 커뮤니티들의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제도적 측면들이 집합적 행동 문제점을 다루는 그들의 역량에 결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어떤 종합적인 접근방식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본 접근방식에 핵심적인 아이디어로 볼 수 있는 조건적 협력과 진정한 신뢰성에 대한 인식 등은 제1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의 토대로서는 제대로 포착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제1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에서는 사회적 자본의 형태로 볼 수 있는 신뢰성, 규범, 신뢰 등을 사회적 상호작용 구조에 착근된 인센티브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왜 일부 커뮤니티는 집합적 행동을 성취하는 데 반해, 여타 커뮤니티는 그렇지 못한가이다. 왜 이탈리아 나폴리 등 남부지역은 부패신뢰구조가 나타나고 북부지역은 그렇지 않은가이다. 왜 루비오(Rubio, 1997)의 사례연구 결과처럼, 콜롬비아 안티오키아의 코카인 수출과 준정치적 폭력사태가 나타나는지, 왜 델라 포르타와 바누치(Della Porta and Vannucci, 1999)의 연구결과처럼 이탈리아에서 정당을 중개로 정치부패시스템이 나타나는가이다. 어떻게 하면,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협력업체와 돈독한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으며, 기술을 빼돌리거나 납기일을 미루지 않는 믿음관계를 형성하는가이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부분에 집중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사회적 자본의 개념화 부분이고, 두 번째는 공공정책 적용 측면이고, 세 번째는 측정 문제이다. 제1부는 서론 부분으로 사회적 자본의 개념화를 다룬다. 제1장 공공정책과 사회적 자본, 제2장 사회적 자본의 의미, 제3장 집합적 행동의 논리 등을 검토한다. 제2부는 사회적 자본의 정책 적용 부분으로서, 제4장 사회적 자본의 기능, 제5장 사회적 자본의 역기능성, 제6장 사회적 자본의 분포 불균등성, 제7장 사적 도시공간의 공적이용 등을 제시한다. 제3부는 사회적 자본의 측정 이론과 경험 부분으로서, 제8장 사회적 자본의 측정 및 제9장 사회적 자본 측정의 실제 등을 살펴본다. 끝으로, 제4부는 미래의 과제와 비전 측면에서, 제10장 한국사회에서의 사회적 자본을 논의한다. 총 4부 10장으로 구성된다.
이 책은 집필과정에서 2015년부터 3년 간 한국연구재단의 저술출판지원을 받았다. 한국연구재단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이 책은 일반교양서는 아니고 학술적인 연구결과에 해당한다. 하지만 ‘관계 담론’이라는 주제의 성격상 가능한 한 일반 독자들에게도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시사성이 있는 내용이나 참고가 될 만한 내용들을 가능한 많이 인용 형태로 본문에 삽입함으로써 가독성을 높이고자 했다. 처음에 손에 쉽게 잡힐 수 있는 두께인 300페이지 정도의 책을 생각했는데, 작업 도중에 점점 살이 붙어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 되었다. 분량만큼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독자들의 질책을 거울삼아 기회가 되면 보완해 나갈 것임을 약속드린다.
2018년 여름
저자 씀
집합적 행동논리와 사회적 자본 담론
펴낸날 제1판 제1쇄 2018년 8월 20일
지은이 박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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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 2015~2018 출판지원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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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F-2015S1A6A4A01009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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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문/3
제1부 사회적 자본의 개념화
제1장 공공정책과 사회적 자본19
제1절 머리말19
제2절 정책자원으로서의 사회적 자본22
1. 사회적 배제의 위험성을 배려하는 정책/24
2. 인생-행로 전이를 지원하는 정책/25
3. 커뮤니티 개발정책/26
제3절 정책결과로서의 사회적 자본29
1. 수명기회의 향상/30
2. 보다 나은 거버넌스/30
3. 시장실패의 극복/32
4. 형평성의 개선/33
5. 외부성(externalities)의 관리/34
6. 쇠퇴의 저지/35
제4절 맺음말과 공공정책상의 함의36
제2장 사회적 자본의 의미42
제1절 머리말42
제2절 사회적 자본의 형태와 정의43
1. 사회적 자본의 형태/44
2. 사회적 자본의 개념화/45
제3절 집합적 행동의 딜레마47
1. 파당의 해악/47
2. 집합적 행동 딜레마의 원인/49
제4절 사회적 자본의 원천, 유형, 영향51
1. 사회적 자본의 원천/52
2. 사회적 자본의 유형/53
3. 사회적 자본의 영향/54
제5절 호혜성의 규범과 네트워크56
1. 호혜성의 규범/57
2. 집합적 행동 문제/58
3. 네트워크/60
제6절 맺음말63
제3장 집합적 행동의 논리69
제1절 머리말69
제2절 전통적 집합적 행동 이론71
1. 전통적 집합적 행동 이론의 전제/72
2. 공통이익과 개별이익/73
3. 무임승차의 유혹/74
제3절 제1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75
1. 제1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의 전제/76
2. 공통이익과 개별 인센티브/77
3. 제1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의 한계/78
제4절 제2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80
1. 집합적 행동의 편익과 한계/80
2. 집합적 행동에서 사회적 자본의 역할/82
3. 가상적 집합적 행동 상황/83
제5절 죄수의 딜레마 게임과 정책적 처방90
1. 죄수의 딜레마 게임/91
2. 정책적 처방/96
제6절 맺음말100
제2부 사회적 자본의 정책 적용
제4장 사회적 자본의 기능109
제1절 머리말109
제2절 사회적 자본의 긍정적 기능111
1. 교육과 어린이 행복/111
2. 안전한 동네/113
3. 경제적 번영/116
4. 건강과 행복/121
5. 민주주의/127
제3절 사회적 자본의 부정적 기능130
1. 정치적 부패/131
2. 네트워크 폐쇄/133
3. 집단사고/135
제4절 맺음말138
제5장 사회적 자본의 역기능성-RIS 차원의 해부144
제1절 머리말144
제2절 사회적 자본과 지역혁신체계(RIS)146
1. 사회적 자본/147
2. 지역혁신체계/149
3. 사회적 자본과 지역혁신체계의 관계/151
제3절 지역혁신체계에서 사회적 자본의 역기능성154
1. 네트워크 폐쇄/154
2. 집단사고/157
3. 과잉동조/160
제4절 정책적 함의162
1. 구조적 차원/163
2. 관계적 차원/165
3. 인식적 차원/167
제5절 맺음말169
제6장 사회적 자본의 분포 불균등성176
제1절 머리말176
제2절 이론적 고찰177
1. 사회적 자본의 정의/178
2. 사회적 자본의 종류/180
3. 호혜성과 집합적 행동/181
제3절 사회적 자본의 잠재적 편익과 한계: 기존 분석결과의 요약183
1. 잠재적 편익/184
2. 잠재적 한계/185
제4절 사회적 자본의 분포 불균등성의 의미와 문제점187
1. 분포 불균등성의 의미/187
2. 분포 불균등성의 문제점/188
제5절 처방적 정책논리194
1. 참여적 거버넌스/194
2. 자발적 협력형 내적 조건의 창출/196
3. 공공재적 속성 고려/198
4. 새 형태의 공동체 역동성/200
제6절 맺음말203
제7장 사적 도시공간의 공적이용-사회적 근접성의 영향209
제1절 머리말209
제2절 이론적․제도적 고찰212
1. 도시재생 패러다임의 변화와 생활인프라/213
2. 근접성 개념의 다의성과 사회적 근접성/215
3. 생활밀착형 공공공간에서 사회적 근접성의 의미/217
제3절 사례의 분석219
1. 사례의 개요/220
2. 사례의 내용분석/223
3. 사회적 근접성의 영향과 그 한계/236
제4절 정책적 함의239
1. 조직 구조적 차원/239
2. 실행 관계적 차원/241
3. 성과 확산적 차원/244
제5절 맺음말 247
제3부 사회적 자본의 측정 이론과 경험
제8장 사회적 자본의 측정257
제1절 머리말257
제2절 사회적 자본의 정의와 형태258
1. 사회적 자본의 정의/259
2. 사회적 자본의 형태/263
제3절 사회적 자본의 측정상의 유의점과 지표270
1. 사회적 자본의 측정상의 유의점/271
2. 사회적 자본의 지표/273
제4절 맺음말277
제9장 사회적 자본 측정의 실제282
제1절 머리말282
제2절 사회적 자본의 측정사례284
1. 사회적 자본과 도시경쟁력/285
2. 벤처기업 연계협력과 사회적 자본/295
3. 역사문화 콘텐츠 활용과 사회적 자본 형성/300
제3절 사회적 자본 측정 경험의 분석결과305
1. 사회적 자본과 도시경쟁력 간의 분석결과/306
2. 벤처기업 연계협력, 신뢰, 성과 간의 분석결과/308
3. 역사문화 콘텐츠 활용과 사회적 자본 형성 간의 분석결과/322
제4절 사회적 자본 측정 결과의 정책적 함의329
1. 사회적 자본과 도시경쟁력 간의 분석결과의 정책적 함의/329
2. 벤처기업 연계협력, 신뢰, 성과 간의 분석결과의 정책적 함의/332
3. 역사문화 콘텐츠 활용과 사회적 자본 형성 분석결과의 정책적 함의/334
제5절 맺음말336
제4부 미래의 과제와 비전
제10장 한국사회에서의 사회적 자본345
제1절 머리말345
제2절 한국사회와 신뢰350
1.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경험/352
2. 압축성장과 제로섬 기업문화/356
제3절 사회적 자본과 개발정책360
1. 뉴 노멀 현상/361
2. 사회적 분열과 사회적 배제/363
3. 포용적 성장과 사회적 자본/369
제4절 국외의 경험에서 얻는 교훈373
1. 불타는 나폴리/373
2. 협력과정과 정직의 눈/377
3. 터키 알라니아 어장/379
4. 공유경제/382
제5절 한국의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3대 방향386
1. 공적신뢰의 회복/387
2. 열린 네트워크로의 이행/391
3. 공동체 정신의 함양/393
제6절 맺음말398
후 기/405
찾아보기/411
서 문
지난 20~30년 사이에, 사회적 자본이 사회과학에서 가장 논란이 된 개념들 중 하나이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적 관계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자본과 같이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이 건강한 노령화, 보다 나은 지역사회 거버넌스, 시장실패의 극복, 형평성의 개선, 외부성의 관리, 그리고 근린지구 노후화와 도시재생 등에 이르는, 아주 다양한 사회적 및 정치․행정적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중요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 책은 사회적 자본이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우리를 더 스마트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고, 안전하게 하고, 부유하게 하고, 그리고 정의롭고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보다 잘 꾸려 나갈 수 있도록 하는지에 대해 기본 개념적 논의, 공공정책적 측면, 측정 문제 등을 중심으로 이론과 실제 양 측면에서 깊이 있게 논의한다. 특히, 사회적 자본의 개념화 과정에서 ‘집합적 행동의 딜레마’와 ‘집합적 행동의 논리’를 전통적 논의, 제1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 그리고 제2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으로 구분하여 검토한다.
몇 년 전 한 식혜회사는 ‘으리(의리)’를 외치는 배우 김보성을 CF 모델로 등장시켜 전년대비 매출액 35% 증가라는 히트를 쳤다. 그가 등장하는 다소 우스꽝스런 광고동영상은 유튜브 조회 300만 건을 훌쩍 넘었다. 어떻게 ‘한물 간’ 배우와 ‘별반 특별하지 않은 상품’에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이변이 나타난 것일까? 일부 경영학자들은 “배우의 이미지와 광고 내용이 딱 맞아 떨어져서” 내지 “의리를 외쳐왔던 김보성의 진정성에 사람들이 감동해서” 등의 진단을 내어 놓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내가 제대로 지키지 못하지만 중요한 그 무엇(의리)을 누군가가 부르짖는 모습에서 반가움”을 느꼈을 수 있다(조선일보, 2014.11.1-2: C2).
각박하기로 따지면 우리나라 중소기업 생태계는 뒷줄에 서지 않는다. 대기업의 ‘갑’질에 사업을 접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신뢰관계를 구축해 함께 성장하는 나라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독일이다. 독일은 지멘스나 BMW 등 대기업이 협력업체의 연구․개발(R&D) 비용을 대신 부담하기도 하고, 가격 후려치기와 같은 불공정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독일 공기청정기 회사인 ‘벤타 에어워셔(Venta Airwasher)’의 알프레드 히츨러(A. Hitzler) 사장도 믿음과 관계를 강조했다(조선일보, 2014.11.1-2: C2). “저희 성공의 핵심 원천은 협력업체와의 끈끈한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 왔습니다. 저희에게 협력업체는 가족과도 같아요. 따라서 그들의 수익을 보장해 주고 일거리를 지켜주는 것은 철칙입니다.” 벤타 에어워셔는 부품 전부를 40여 중소기업 공급사에 위탁 생산하며, 본사는 조립하고 검수하는 일만 한다. 본사는 R&D에 특화한다. 벤타의 모든 제품은 독일에서 만들어진다. 협력업체도 모두 벤타 본사 주변에 모여 있다. 히츨러 사장은 “중국에서 만들면 더 저렴한 가격으로 더 많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서 협력업체와 함께 일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들과 함께 쌓은 노하우가 있거든요. 오랜 관계를 통해 저희는 서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14년 초에는 이탈리아 나폴리 마피아 조직 카모라(Camorra)가 주도하는 유해폐기물의 불법적 소각에 따른 대기오염과 지하수원 오염 등에 대해 ‘불타는 쓰레기 도시 나폴리’라는 이색보도가 있었다(Marchetti, 2014.1.27: 22-23). 환경오염과 농산물 오염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아체라의 시장 라파엘레 레티에리는 “이탈리아 농산물의 세계적 평판을 깎아 내리고 지역경제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세계적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해외에 사는 내 친구들은 요즘 이탈리아 농산물을 사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왜 벤타 독일의 히츨러 사장은 협력업체를 존중하고 그들의 자율성을 보장해 줄까? 왜 독일기업들은 제품개발 초기부터 협력업체와 머리를 맞대는데, 우리 대기업은 흔히 자체적으로 개발 계획을 세운 다음, 목표하는 원가와 납기를 협력업체에 요구하면서 왜 그런 계획을 세웠는지를 미리 [ESI(Early Supplier Invovlement)] 가르쳐 주지 않을까? 벤타 독일의 히츨러 사장은 협력업체가 투자계획을 늘리도록 적정이익의 보장을 우선시하는데, 왜 우리 대기업은 협력업체가 받는 가격을 후려쳐서 관계도 나빠지고 협력업체의 경쟁력도 훼손될까? 왜 ‘갑’질하는 대기업의 임원과 협력업체 간에 납품을 전제로 또는 황금시간대에 홈쇼핑 방영시간 배정을 전제로 ‘부패사슬’이 존재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사람들 간에 의리 내지 신뢰관계에 목말라하면서 동종업계 사람들끼리 동업자 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할까? 왜 이탈리아 남부 휴양도시로 명성이 높은 나폴리는 경제적 자원의 왜곡된 분포가 강화되고 있고, 민주주의가 손상되고 있고, 그리고 공모와 부패가 만연하게 된 것일까?
몇 가지 흥미로운 주변 예를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에 대한 의문점들이 여러 다른 정책적 이슈에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의문점들에 대해 후쿠야마(Fukuyama, 1996)는 ‘신뢰’의 결여문제라고 간명하게 답한다. 독일, 일본, 미국 등 선진산업사회는 신뢰수준이 높은 사회임에 반해, 한국․중국 등은 신뢰수준이 낮은 사회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신뢰는 포괄적 호혜성을 전제로 한 신뢰이다. 따라서 특정적 호혜성에 주로 의존하는 한국과 중국 등은 혈연 등 가족에 집착하고 기업경영에도 그와 같은 요인이 강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퍼트넘 외(Putnam et al., 2000)는 이탈리아 남․북 간의 성장역량과 민주주의, 시민적 전통 차이 등에 대한 지역연구에서 주로 ‘역사적 우연’에 토대한 지역적 문화와 규범의 차이는 정치구조와 관행, 제반 거래관계, 그리고 경제적 성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보다 최근에 이루어진, 미국사회의 커뮤니티 붕괴와 재생 현상에 대한 퍼트넘(Putnam, 2009)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특정 시점을 전후하여 미국 커뮤니티의 사회적 자본 수준이 전반적으로 쇠퇴하고 있고, 그 사회적 자본 수준이 지역의 경제성장, 안전, 교육적 성취, 보건 등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의 답은 바로 사회적 자본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포괄적 호혜성’이 높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포괄적 호혜성이 높은 사회는 그 정의상 부정부패가 발을 붙이기 어렵고, 거래에 대한 감시 및 점검비용이 낮아지므로 경제적 효율성이 높고, 뿐만 아니라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적 한계집단에 대한 배려 역시 용이하다. 즉, 포괄적 호혜성이 높은 사회가 ‘좋은 사회(A Good Society)’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포괄적 호혜성이 높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정치사상가 등의 학자들, 정치가, 관료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예컨대, 맹자(孟子)는 이(利)에 따른 결정보다 의(義)에 따른 결정을 강조했다. 인간은 원래 측은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 사양지심 등을 가진 선한 존재이기 때문에 의(義)에 따른 결정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다만, 의(義)에 따른 결정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고, 인, 의, 예, 지 등의 덕(德)을 끊임없이 닦음으로서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맹자의 주장은 규범적으로 옳지만, 실제 제대로 구현되지는 못했다. 역설적으로, 성리학의 전통이 강했던 한국과 중국 등에서 오히려 서구사회에 비해 포괄적 호혜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특정적 호혜성이 지배적으로 작동해 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관련 논의 맥락을 서구 사회과학 논의에서 오래전부터 주목해 왔던 ‘집합적 행동의 딜레마’에서 살펴볼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 논의나 흄(D. Hume)이 인간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에서 언급한 농부들의 품앗이에서 상호신뢰와 믿음의 부족으로 인한 수확상실의 경우처럼, 참여자 모두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모두에게 가장 큰 이익이 주어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무임승차자나 기회주의적인 행동 등으로 인해 공동체 전체는 수확량 감소, 거래량 감소, 감시비용 증가와 편익 감소 등의 부정적인 효과를 얻게 된다. “포괄적 호혜성은 공동체의 자산이지만, 공동체 구성원들이 멍청하게 잘 속아 넘어가는 것은 그렇지 않다”(퍼트넘, 2009: 220). 단순한 믿음이나 믿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신뢰성이 핵심요소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에 대해, 올슨(Olson, 1965)은 벌써 반세기 전에 집합적 행동의 논리: 공공재와 집단이론(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 Public Goods and the Theory of Groups) 저서에서 전통적인 집단행동 이론가들인 벤틀리(Bentley, 1949)와 트루먼(Truman, 1958) 등의 지나치게 규범적이고 순진한 믿음(공통이익을 가진 개인들은 그 공통이익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행동할 것이다)을 비판하며, 집합적 행동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올슨(Olson, 1965)과 하딘(Hardin, 1968) 등은 개인들은 그들이 따로 남겨지게 되면 결합적 편익(joint benefits)을 성취할 수 없음을 지적하고, 이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들의 가정된 무능력(the supposed inability of individuals)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외부당국에 의한 규제, 선택적 인센티브의 제공, 또는 사유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오스트롬(Ostrom, 2005), 오스트롬과 안(Ostrom and Ahn, 2007) 등은 올슨(Olson, 1965)과 하딘(Hardin, 1968) 등의 집합적 행동 이론을 제1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으로 규정하고, 제2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을 제시한다. 제1세대 이론들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집합적 행동 상황들이 구조화되는 방식, 그리고 개인들이 어떻게 그 상황들에 대처해 나가는가에 대한 제한적인 경우만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제2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은 제1세대 이론에서의 원자화된, 이기적인, 그리고 완전히 합리적인 개인들의 존재를 비판한다. 보편적인 이기심의 가정을 비판하고, 다양한 유형의 개인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제1세대 이론의 핵심적인 모델링 도구였던 ‘표준적 비협력 게임이론’에 더하여 제2세대 이론은 행태적 이론과 진화적 게임이론을 이용한다. 행태적 이론에서 사회적 동기 문제, 그리고 진화적 게임이론에서 내생적 선호 문제 등을 다룬다.
따라서 이 책은 사회적 자본의 형태들이 어떻게 사람들 간에 신뢰를 증진하는지, 그래서 집합적 행동 상황에서 협력을 키워가는지를 제시한다. 집합적 행동의 다양한 측면은 사회적 자본의 개념에 의탁함이 없이 연구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상황에서는, 사회적 자본의 개념이 관련 퍼즐을 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은 어떻게 다양한 규모의 커뮤니티들의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제도적 측면들이 집합적 행동 문제점을 다루는 그들의 역량에 결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어떤 종합적인 접근방식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본 접근방식에 핵심적인 아이디어로 볼 수 있는 조건적 협력과 진정한 신뢰성에 대한 인식 등은 제1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의 토대로서는 제대로 포착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제1세대 집합적 행동 이론에서는 사회적 자본의 형태로 볼 수 있는 신뢰성, 규범, 신뢰 등을 사회적 상호작용 구조에 착근된 인센티브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왜 일부 커뮤니티는 집합적 행동을 성취하는 데 반해, 여타 커뮤니티는 그렇지 못한가이다. 왜 이탈리아 나폴리 등 남부지역은 부패신뢰구조가 나타나고 북부지역은 그렇지 않은가이다. 왜 루비오(Rubio, 1997)의 사례연구 결과처럼, 콜롬비아 안티오키아의 코카인 수출과 준정치적 폭력사태가 나타나는지, 왜 델라 포르타와 바누치(Della Porta and Vannucci, 1999)의 연구결과처럼 이탈리아에서 정당을 중개로 정치부패시스템이 나타나는가이다. 어떻게 하면,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협력업체와 돈독한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으며, 기술을 빼돌리거나 납기일을 미루지 않는 믿음관계를 형성하는가이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부분에 집중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사회적 자본의 개념화 부분이고, 두 번째는 공공정책 적용 측면이고, 세 번째는 측정 문제이다. 제1부는 서론 부분으로 사회적 자본의 개념화를 다룬다. 제1장 공공정책과 사회적 자본, 제2장 사회적 자본의 의미, 제3장 집합적 행동의 논리 등을 검토한다. 제2부는 사회적 자본의 정책 적용 부분으로서, 제4장 사회적 자본의 기능, 제5장 사회적 자본의 역기능성, 제6장 사회적 자본의 분포 불균등성, 제7장 사적 도시공간의 공적이용 등을 제시한다. 제3부는 사회적 자본의 측정 이론과 경험 부분으로서, 제8장 사회적 자본의 측정 및 제9장 사회적 자본 측정의 실제 등을 살펴본다. 끝으로, 제4부는 미래의 과제와 비전 측면에서, 제10장 한국사회에서의 사회적 자본을 논의한다. 총 4부 10장으로 구성된다.
이 책은 집필과정에서 2015년부터 3년 간 한국연구재단의 저술출판지원을 받았다. 한국연구재단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이 책은 일반교양서는 아니고 학술적인 연구결과에 해당한다. 하지만 ‘관계 담론’이라는 주제의 성격상 가능한 한 일반 독자들에게도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시사성이 있는 내용이나 참고가 될 만한 내용들을 가능한 많이 인용 형태로 본문에 삽입함으로써 가독성을 높이고자 했다. 처음에 손에 쉽게 잡힐 수 있는 두께인 300페이지 정도의 책을 생각했는데, 작업 도중에 점점 살이 붙어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 되었다. 분량만큼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독자들의 질책을 거울삼아 기회가 되면 보완해 나갈 것임을 약속드린다.
2018년 여름
저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