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말 구글 위성으로 북한의 평양을 검색하다가 흥미로운 지명을 발견했다. “어, 여기도 강남이 있네!” 평양을 가로지르는 대동강 남동쪽과 고속도로 사이에 분명 강남이라는 지명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평양직할시 강남군(江南郡)과 강남읍(江南邑)이었다. 마치 서울의 경부고속도로가 시작되는 한강 남동쪽 방면에 서울특별시 강남구가 있는 것과 무척이나 비슷해서 DMZ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쌍둥이를 보는 듯했다. 물론 위성지도로 좀 더 자세히 확대해 보니 평양의 강남과 서울의 강남은 확연히 달랐다. 북한의 강남은 텅 비어 있고 남한의 강남은 수많은 건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 환경과 지명은 비슷했지만 모습은 완전히 다른 이란성 쌍둥이처럼 한쪽은 농경지, 또 다른 쪽은 화려한 빌딩 숲이었다. 서울의 강남 모습을 평양에서 비슷하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은 평양의 강남이 아니라 오히려 평양의 강북, 만수대였다. 북한 권력은 대부분 평양에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평양 성곽의 내성에 위치한 만수대 주변에서 북한의 권력이 나온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평양의 특권층 가운데에서도 선택된 자만이 만수대 고층 아파트에 살 수 있고, 만수대 거리 주변에는 만수대 의사당을 비롯한 장대한 건물들을 만나볼 수 있는 진풍경이 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분단 70년을 전후로 평양 강남과 서울 강남은 참으로 다른데 과연 그 차이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아마도 연세가 좀 있는 분들이라면 1970년대 서울 강남을 지금도 꽤나 선명하게 기억할 것이다. 당시에는 강남이란 지명도 없어서 ‘영등포(永登浦)의 동(東)쪽’이란 의미로 ˹영동(永東)지구라고 지칭되었는데 매일 수많은 대형 덤프트럭이 뒤엉켜서 모래밭과 논밭을 메우는 모습이 일상이었다. 그렇지만 불과 10년 만에 서울 강남은 탁 트인 넓은 격자 도로와 88서울올림픽 경기장, 그리고 대형 건물과 아파트촌으로 차 오르기 시작했다. 또 다른 10년이 지나면 강남 아파트들이 며칠 사이에 수천만 원씩 가격 폭등하다가 한순간에 반값 아파트로 추락했던 1997년의 경제위기 상황도 겪게 된다. 심각했던 외환위기를 견뎌 낸 강남은 불과 30년 만에 버려진 땅에서 돈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되었고, 2010년대부터는 수많은 성형외과가 즐비한 곳이 되었으며 한류 문화의 생산 기지가 되었다. 서울의 강남은 이렇게 빛의 속도로 변화를 겪었다. 그렇지만 서울의 강남과는 대조적으로 평양의 강남은 한적한 농촌 그대로 지난 수십 년 동안 거의 변한 것이 없었다. 백여 년 전까지 한양성곽 내부의 구중궁궐 경복궁에 살고 있었던 조선 시대의 왕은 현재 대한민국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경복궁은 조선 왕이 기거했던 유적지이고 그것은 과거일 뿐이다. 모든 것이 변한 것이다. 물론 지금도 경복궁 위쪽 인왕산 아래에 청와대가 있어 권력의 핵심이 있다고 하지만 이젠 5년을 주기로 그 주인이 바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평양은 어떠한가? 평양성의 깊숙한 만수대에는 새롭게 왕이 등장했다. 해방 이후 오늘까지도 북조선의 제왕은 3대를 이어 집권하면서 그 권력이 만수대 주변에서 추호의 흔들림도 없다. 이와 같은 대목에서 만수대와 강남을 비교해 보았다. 만수대는 국가 권력 또는 공공 부문(public sector)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비유될 수 있다. 왕이 사라진 서울의 경복궁은 유물이 되었지만 평양의 만수대는 왕이 존재하고 과거의 조선 왕보다 더 강력한 국가 권력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만수대는 이처럼 국가와 정부의 강력한 권력을 상징한다. 평양의 만수대에 비하면 서울의 강남은 어디에 비유될 수 있을까? 강남은 만수대와 확연히 다른, 시장 부문(market sector)으로 비유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시장의 활동이 거의 없었던 조선 시대, 남산을 넘어 한강을 건너면 오늘날의 강남땅이 나타났지만 당시의 강남은 홍수 때마다 지형이 바뀌는 버려진 곳이었다. 조선 시대는 제대로 된 시장, 이른바 강남이란 버려진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남한에 세워진 새로운 대한민국 안에서 시민들은 6․25전쟁의 고통과 최악의 경제 상황에도 이를 악물고 시장 경제의 치열함을 배웠다. 그리고 버려져 있던 한강의 남쪽을 시장의 시각에서 다시 응시했으며, 불과 30년 사이에 강남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만수대와 강남을 바라보자. 공공 부문의 상징(만수대)과 시장 부문의 상징(강남)을 비교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핵심과 자유주의의 핵심을 만수대와 강남이라는 실체에서 파헤쳐 보자는 것이다. 사실 만수대라는 국가 또는 정부의 공권력은 서울과 평양 양쪽에 모두 존재한다. 서로 비슷한 장단점도 갖고 있다. 오히려 국가 권력 측면에서만 본다면 북한의 만수대가 남한의 만수대보다 더 큰 효과를 보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북한에는 제대로 된 시장 기능이 거의 없다. 평양의 시장은 너무도 취약하고 무기력하다. 평양에는 만수대만 있을 뿐 강남이 없다. 정부는 있어도 시장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강남이라는 시장적 아이콘이 만병통치약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북한의 경우는 너무 심했다. 제대로 된 시장 경제가 없다면 그것은 과거 봉건 시대의 조선 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발전이 아니라 후퇴이며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일 수 있다.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조선이라는 봉건국가는 붕괴되었다. 20세기의 대한민국은 자유주의적 시장과 기업, 개인의 역할을 중시하는 단계를 밟았다. 그리고 이제 21세기의 대한민국은 한 차원 더 높은 그 다음 단계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다. 자연스럽게 강남과 만수대, 즉 시장과 정부의 문제점을 뛰어넘어 새로운 혁신을 이끌 방향 제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물론 남한은 시장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그 시장의 한계점에 직면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라 해도 남한의 대다수 노인은 빈곤하고, 청년의 꿈은 사라졌으며,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과 이혼율로 남한은 우울하다. 활기찬 미래를 잃어버린 것 같은 참담함이 있다.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아이가 사라지고 인구가 줄어서 국가가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강남의 한계 상황, 시장의 활력이 약화되면서 남한 사회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상대적 차이가 있겠지만 북한에게 그 상황은 더욱더 절실할 것이다. 북한은 만수대라는 국가 권력적 역할을 통해 1950년 한국전쟁과 1980년대까지의 계획경제 속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겠지만 이제는 핵무기와 미사일 이외에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 소련제국이 해체되고 탈이념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북한이 고립된 체제 속에서 생존을 향한 극한 투쟁을 이어나가는 것도 이제는 한계 상황이다. 이와 같은 와중에 주변 정세는 급변했다. 분단 70년을 겪으면서 한민족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사이, 21세기 동북아시아는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세계의 돈이 몰리는 지역이 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 양쪽 끝에는 중국과 일본이 뜨겁게 경쟁하고 있으며,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은 중국과 일본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제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한민족은 분명히 변해야 할 텐데 아직도 방향을 정확히 잡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아마도 똑똑한 남북한의 정부와 시장 그리고 시민들도 그 심각성을 더 잘 알고 고뇌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언하게 되었다. “두들겨 보자, 남북한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지금까지도 공백으로 남아 있는 평양의 강남이라는 새로운 시장적 가능성에 남북한이 함께 관심을 갖자고 제언하는 것이다. 마치 버려졌던 서울의 강남을 30년 만에 화려하게 변화시켰던 것처럼 이제 평양의 시장 경제, 평양의 강남을 한 차원 높게 발전시켜 보자는 것이다.어찌 보면 한민족에게 남북 분단은 치명적 상처이고 비극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념적 상처를 디딤돌 삼아 새롭게 변화해야 할 시점이다. 전 세계의 도움으로 생존한 한민족은 이제 전 세계를 향해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극단적 이데올로기 갈등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공포를 이제는 벗어 던져야 한다. 마치 16세기 스페인의 무적함대 침공 앞에서 공포에 떨던 약소국 영국이 미래를 향한 용기를 담대하게 선택한 순간, 새로운 17세기 산업혁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에 견주어 본다. 이제 남한과 북한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공포심을 벗어 던지고 남한의 자유주의와 북한의 사회주의를 새롭게 융합할 용기를 선택해야 한다. 아메리카와 함께 눈높이를 맞추고, 아시아의 이웃을 좋은 친구삼아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모든 청년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빈곤과 전쟁으로 얼룩진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번영을 제시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해야 한다. 20세기의 이념적 모순을 치열하게 경험했던 한반도에서 21세기의 새로운 세상 문을 여는 흥미진진한 여정에 우리의 독자들도 함께 동참할 것을 제안해 본다. 2015년 새해를 맞으며 북한산 연구실에서 김정훈 차 례 프롤로그 9 제1장 왜 평양과 강남인가? 15 1. 평양의 만수대∙16 2. 평양의 장성택 소용돌이∙20 3. 평양에도 강남이 있다∙24 제2장 유행 1번지, 강남과 만수대 27 1. 강남과 만수대∙28 2. 서울 만수대의 문제점∙30 3. 만수대에서 강남으로∙38 제3장 만수대에는 없는 신사동 가로수길 44 1. 국가주의적 공공 부문의 한계∙45 2. 강남 가로수길의 탄생∙48 3. 문화가 자본이 되는 가로수길∙51 제4장 강남 개발은 왜, 누가 시작했을까? 55 1. 박흥식의 남서울신도시계획안∙56 2. 월남 파병과 대통령의 강남 개발 전략∙64 3. 자본 없이 자본을 만드는 토지구획 정리사업∙69 제5장 뒷골목에서 찾은 강남의 30년 스토리 75 1. 강남 제비와 신사동 카바레∙75 2. 강남의 땅부자 이야기∙79 3. 요동쳤던 강남 부동산∙85 제6장 버려진 모래밭을 황금으로 바꾼 강남 스타일 90 1. 목숨을 건 강남 스타일∙91 2. 시장의 힘을 활용한 강남 스타일∙93 3. 위기와 기회가 있는 강남 스타일∙96 제7장 프라하, 홍콩, 마카오에서 바라본 평양의 강남 99 1. 프라하의 쿠폰 경제∙100 2. 홍콩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107 3. 마카오․중국의 낙차 효과∙114 제8장 평양 강남의 세 가지 융합 설계 방향 121 1. 쿠폰 경제와 돈(money)∙122 2.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와 시장(market)∙126 3. 낙차 효과와 부(wealth)∙131 제9장 평양 강남 개발의 실행 작업 136 1. 신뢰성 있는 평양의 강남 개발∙137 2. 현실성 있는 평양의 강남 개발∙141 3. 변화 가능한 평양의 강남 개발∙144 에필로그 149 참고 문헌 155 찾아보기 162 Summary of the Book 220 <부록> 1.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167 2. 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199 3.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205 저자약력 김정훈(Jung H. Kim) 사단법인 한국행정학회, 한국정책학회 이사 미국 국무성 초청 Fulbright Scholar at Harvard Law School 미국 MIT 국제인권연구소 연구위원(비상근) 청와대 정책위원(비상근)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전문위원(비상근) 현) 서경대학교 공공인적자원학부 교수 서울특별시 정책자문위원 사단법인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 시민의 정부혁신론(1997) 변화의 시대, 경제주체의 선택(공저, 1998) 정부조직의 혁신(공저, 1998) 서울시정의 바른 길(공저, 2002) 자원순환사회와 NGO(2006) 한국정부와 민주행정(공저, 2006) 북한의 정부혁신론(2012) 평양과 프라하(2013) e-mail: cycle21@skuniv.ac.kr |